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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라는 끝없는 미로 속에서 타이밍을 엿보던 나는 결국 항복했다. 그리고 단순하고 평화로운 우상향의 길을 걷기로 했다.
이 글은 2022년 12월 20일, 내가 개인 노트에 두서없이 갈겨썼던 메모의 원본이다.
당시는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밥 먹듯이 밟고, 주식 계좌가 매일 파랗게 멍들어가던 시기였다. 내 자산이 녹아내리는데 도대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답답했다. 그래서 무작정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래는 그때 쏟아지는 정보들을 주워 담으며 적었던 나의 생생한(그리고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이다.
2022년 12월 20일의 메모, 그리고 현실 번역기
전문가들의 분석을 흉내 내며 닥치는 대로 적었던 메모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 건조한 용어들이 내 삶에서 진짜 어떤 의미였는지 번역할 수 있었다.
📝 내 메모: PPI/CPI가 뭐야? 상품, 서비스, 렌탈 등으로 물가를 측정한다고? 👤 현실 번역: 내 계좌가 박살나고 있는데 이런 지표들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면 연준이 금리를 올리고, 금리가 오르면 내 주식이 빠진다는 무서운 연쇄 작용을 태어나서 처음 뼈저리게 체감했다.
📝 내 메모: 기준금리 효과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 현실 번역: 연준이 어제 금리를 올렸다고 오늘 당장 내 삶이 망가지는 게 아니다. 6개월 뒤 대출을 연장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 소리 없이 내 목을 조여온다는 뜻이다. 개인은 이 거대한 흐름에서 언제나 '뒷북'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내 메모: 금리와 부채의 역설... 대출 총액이 늘면 컨트롤이 어렵다. 👤 현실 번역: 무리해서 집을 산 직장 동료들의 이자가 두 배로 뛰었다. '사회가 빚더미라 나라에서 금리를 함부로 못 올릴 것'이라며 다들 안심했지만, 냉혹한 거시경제는 개인의 얄팍한 희망 회로를 무참히 박살냈다.
[내 지갑이 얇아지는 공식]
가처분소득 = 임금 - 이자(금리) - 고정생활지출비(물가)
당시 가장 뼈아픈 깨달음이었다. 매년 연봉 협상을 해서 임금이 조금 올라도, 금리(대출 이자)와 물가(외식비, 렌탈비 등)가 동시에 올라버리니 가처분소득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왜 18년이나 회사를 다녀도 늘 삶이 팍팍하게 느껴졌는지, 이 잔인할 정도로 단순한 공식을 내 손으로 직접 적어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 내 메모: 환율, 엔 캐리 트레이드, 양적완화(QE), 테이퍼링, 일본의 YCC... 👤 현실 번역: 파고들수록 변수가 미친 듯이 많았다. 일본 은행의 결정이 미국 국채를 흔들고, 그게 다시 한국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아, 이건 퇴근 후 짬을 내어 책 몇 권 읽는 직장인이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구나. 이 끄적임의 끝에서 나는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메모를 다시 보며 드는 생각
전문가가 보면 엉성하게 꿰매진 지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메모에는 내 자산을 지키고 싶었던 2022년 겨울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부가 왜 필요했을까?
시장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가처분소득 = 임금 - 이자(금리) - 고정지출(물가)'라는 단순한 공식을 내 손으로 적어보고 나서야, 왜 매달 월급을 받아도 삶이 팍팍해지는지, 왜 시장이 이토록 발작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때의 맹렬했던 공부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진정한 ETF 적립식 투자로 이끌어준 가장 확실한 징검다리가 되었다.
물가, 환율, 고용, 금리, 각국의 양적완화 정책까지... 이 모든 수급과 거시경제 지표를 매일 추적하며 개별 주식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직장인인 나에게 불가능한 영역임을 깨달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투자를 맹목적으로 운에 맡기거나 공부를 멈춘 것은 아니다.
개별 주식부터 시작해 섹터 ETF, 그리고 종국에는 인덱스 ETF까지 닥치는 대로 파고들며 공부한 끝에, 나는 마침내 나에게 맞는 **확고한 투자 방법론(KCA 시스템)**을 정립할 수 있었다. 거대한 매크로의 파도를 예측하려 들지 않고, 자본주의의 장기적인 우상향을 믿으며 묵묵히 배를 저어가는 그 방법론 말이다.
이제 나에게는 두 가지 무기가 생겼다. 폭락장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철저한 마인드셋', 그리고 수많은 공부 끝에 다듬어낸 '올바른 투자 방법론'.
이 두 자루의 무기를 손에 쥐었기에, 나는 앞으로 어떤 거대한 파도가 덮쳐오더라도 두려움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