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 또 1조를 내놨다 — 그리고 나는 반성했다

📰 원문 기사: Warren Buffett Donates Another $1 Billion — WSJ
(WSJ 구독 필요 · 2024년 11월)
2024년 11월의 어느 날 밤, 나는 증권사 앱을 열고 수익률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3.2%. 나쁘지 않았다. 근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했다.
그때 뉴스 알림이 떴다.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 11억 달러 상당 추가 기부"
약 1조 4천억 원. 그냥 내놨다. 또.
버핏 할아버지의 일상
버핏 할아버지의 기부 이력을 보면 좀 서프라이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자기 재산의 99%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공언하고, 실제로 매년 조금씩 — 아, 조금이 아니라 수조 원씩 — 내놓고 있다.
이번엔 자녀들이 운영하는 4개의 가족 재단에 나눠 기부했다. 빌 게이츠 재단에 맡기던 유언장도 바꿨다. 이제 본인 사후에 남은 재산은 세 자녀가 만장일치로 의사결정하는 자선 신탁에 넣기로 했다.
그리고 주주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유언장에 서명하기 전에,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 먼저 읽게 하라.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하라."
93세 할아버지의 유언장 조언. 어딘가 따뜻하고 어딘가 현실적이다.
그런데, 버핏은 어떻게 '그 버핏'이 됐을까
사실 오늘날의 워렌 버핏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투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벤자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버핏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그레이엄의 강의를 듣고 완전히 사로잡힌다. 졸업 후에는 그레이엄의 회사 그레이엄-뉴먼 코퍼레이션에 입사해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 말하자면 버핏 1.0은 그레이엄의 복사본이었다.
그레이엄의 철학: 담배꽁초 줍기 (Cigar Butt Investing)
그레이엄의 방법은 이렇다.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는다. 더럽고 볼품없지만, 아직 한 모금은 남아 있다. 공짜로 주운 거니까 그 한 모금이 전부 이익이다.
투자로 옮기면, 회사의 청산가치(장부가)보다 훨씬 싼 주가에 거래되는 기업을 산다는 뜻이다. 회사가 망해도 자산을 팔면 이익이 남는 구조. 딱 한 번의 가치 회복을 노리고 팔아치운다.
이 방법은 실제로 잘 먹혔다. 버핏은 이 전략으로 젊은 시절 꽤나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담배꽁초는 한 모금이 전부다. 피고 나면 또 다른 꽁초를 찾아 나서야 한다. 포트폴리오가 커질수록 이 방법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리고 매번 싸구려 기업을 사다 보니, 주변에는 늘 시원찮은 사업들만 쌓여갔다.
버핏 스스로도 나중에 고백한다. 버크셔 해서웨이도 사실 담배꽁초였다고. 섬유 공장이 헐값에 거래된다고 샀다가, 되팔지도 못하고 수십 년을 안고 살았다고. 그는 이걸 두고 "멍청한 짓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찰리 멍거가 등장한다
1959년, 버핏은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찰리 멍거(Charlie Munger)**를 처음 만난다. 변호사 출신의 이 괴짜는 버핏의 말에 막힘없이 받아치고, 심지어 몇 가지는 반박까지 했다. 버핏은 그날 저녁을 두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 중 하나"라고 회고한다.
멍거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적당한 가격의 나쁜 기업보다, 적정한 가격의 위대한 기업이 낫다."(It's far better to buy a wonderful company at a fair price than a fair company at a wonderful price.)
버핏 2.0의 탄생이었다.
멍거는 숫자만 보는 그레이엄 방식의 한계를 정확히 짚었다. 싸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을 사면, 결국 싸구려 기업의 주인이 된다. 반면 경쟁자가 쉽게 넘볼 수 없는 해자(moat)를 가진 위대한 기업은, 굳이 팔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돈을 벌어다 준다.
그 첫 번째 실험이 **씨즈 캔디(See's Candies)**였다. 1972년, 멍거의 설득으로 버핏은 2,500만 달러를 내고 이 초콜릿 회사를 샀다. 그레이엄 방식으로 보면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씨즈 캔디는 이후 50년간 버크셔에 20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안겨준다. 한 번 사고 50년을 기다린 것이다.
이후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그리고 훗날 애플까지. 버핏은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됐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찰리는 나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았다."
그렇다면 나는 가치투자를 해야 할까?
여기서 솔직해져야 한다.
버핏과 멍거처럼 기업의 내재가치를 분석하고, 해자를 평가하고, 10년 후 이익을 예측하는 능력 — 나에게는 없다.
나는 재무제표를 깊이 읽을 줄 모르고, 산업 구조를 꿰뚫어보는 눈도 없다. 씨즈 캔디를 보고 "이건 위대한 기업이다"라고 확신하는 멍거의 안목은, 아마 평생을 공부해도 쉽게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ETF 적립식 투자.
내가 개별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면, 시장 전체를 사면 된다. S&P500이든, 전 세계 주식이든. 인류가 꾸준히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매달 일정 금액을 시스템이 자동으로 사게 해뒀다.
이게 버핏의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버핏 자신이 이 방법을 평범한 투자자에게 추천한다.
"대부분의 투자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저비용 인덱스 펀드를 꾸준히 사는 것이다."
그레이엄에게 배우고, 멍거에게 깨달음을 얻고, 수십 년간 주식을 분석해온 사람이 결국 일반인에게는 이 방법을 권한다. 어쩌면 나는 스승의 말을 잘 따르는 모범생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게으른 건지. 🤷
그래서 나는 뭘 하고 있었나
다시 내 앱으로 돌아왔다.
+3.2%.
이 숫자에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오늘 오르면 기분 좋고, 내리면 찝찝하고. 매달 적립하는 게 의미 있는 건지 가끔 흔들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버핏 소식을 보고 잠시 멈췄다.
이 사람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는 투자를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봤던 것 같다. 돈을 쌓는 게 아니라, 돈이 세상에 흘러가도록 만드는 파이프라인.
나는 아직 그 파이프라인의 입구를 막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흘려보내고 싶다. 작더라도.
이 사이트를 만든 이유
솔직히 말하면, 이 기사를 본 날이 이 사이트를 만들게 된 계기다.
원빌리언달러 도네이션. 말이 안 되는 꿈처럼 들린다. 나는 직장인이고, 두 딸이 있고, 오늘도 내가 만든 시스템은 자동으로 주식을 산다.
버핏도 처음부터 1조를 기부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그냥 오래, 꾸준히, 자기 방식대로 했을 뿐이다.
Stay the Course. 흔들리지 말고, 계속 가자.
나도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다. 🌿
이 글은 버핏 할아버지에 대한 팬레터이자, 나 자신을 위한 다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