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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과 바퀴에 비견되는 위대한 발명: 존보글은 인덱스 펀드를 어떻게 탄생시켰는가

존 보글과 뱅가드의 비전 — 투자의 역사를 바꾼 그날

"나는 보글의 이 발명품을 바퀴, 알파벳,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그리고 와인과 치즈의 발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보글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주진 못했지만 우리들의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려준 펀드.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그 무언가입니다." — 폴 사무엘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내 서재에는 닳고 닳은 책이 두 권 있다. 바로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와 『Stay the Course』다. 주식 시장이 미친 듯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붉게 물든 차트 대신 이 책들을 펼친다.

존 보글(John C. Bogle). 보통은 친근하게 **'잭(Jack)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가 만든 '인덱스 펀드'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투자의 나침반이자, 수백만 명의 평범한 직장인들을 구원한 최고의 발명품이다.

도대체 이 할아버지는 어떻게 200년 넘게 이어진 월스트리트의 상식을 뒤엎고 이런 어마어마한 발명품을 만들어냈을까?


천재 대학생, 월스트리트의 뼈를 때리다

이야기는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린스턴 대학교 4학년이던 잭 보글은 졸업 논문으로 펀드 산업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하지만 뼈아픈 진실을 하나 발견한다.

"펀드 매니저들한테 비싼 수수료를 떼어주고 나면, 결국 시장 전체의 평균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이길 수 없다."

22살 대학생의 이 도발적인 통찰은 훗날 세상을 바꿀 '인덱스 펀드'의 첫 번째 씨앗이 된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는 졸업 후 웰링턴 매니지먼트에 입사해 CEO 자리까지 승승장구했지만, 1974년 무리한 합병 실패의 책임을 지고 이사회에서 무참히 해고당하고 만다.

인생 최대의 좌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뼈아픈 해고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인덱스 펀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시장 전체를 사야 하는가?

잭 보글은 해고의 좌절 속에서 자신의 1951년 논문, 그리고 유진 파마의 '효율적 시장 가설'을 다시 떠올렸다. 가끔 내 계좌 수익률이 남들의 화려한 단타 수익에 비해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잭 보글이 당시의 깨달음을 담아 훗날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에서 했던 말을 되새긴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지 마라, 건초더미 전체를 사라."

어떤 주식이 내일 오를지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제로섬 게임). 거기에 수수료와 세금까지 떼면 무조건 지는 게임(마이너스섬 게임)이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기업과 노동자들이 매일 혁신하고 땀 흘리는 한, 시장 전체의 파이는 반드시 커진다. 물가가 오르면 기업의 매출과 제품 가격도 같이 오르니 인플레이션 방어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러니 소수의 승리하는 주식(바늘)을 찾으려 헛힘 쓰지 말고, 그냥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흐름(건초더미) 자체에 내 돈을 태우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것을 그는 확신했다.


보글의 바보짓 (Bogle's Folly)

"그래, 시장을 이기려 애쓰지 말고 그냥 시장 전체를 통째로 사버리는 펀드를 만들자."

해고당한 직후인 1974년 9월, 잭 보글은 절치부심하며 새로운 자회사를 세운다. 이름하여 '뱅가드(Vanguard)'. 넬슨 제독이 탔던 전설적인 기함의 이름에서 따왔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부수고 나가는 선봉장이 되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때마침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이 학술지에 *"누구도 S&P 500을 지속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했다. 누군가 제발 지수 자체를 쫓아가는 펀드를 만들어달라!"*며 그의 생각에 불을 지폈고, 1976년 8월, 마침내 세계 최초의 개인용 인덱스 펀드가 세상에 나왔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자금 모집액은 목표치의 10%도 채우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의 펀드 매니저들은 그를 맹렬히 비웃었다. "수익률 평균(지수)에 만족하라고? 그건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모독이야!" 언론은 이를 두고 **'보글의 바보짓(Bogle's Folly)'**이라며 조롱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온갖 수모를 견디며 꿋꿋이 자신의 궤도를 유지했다.


'바보짓'이 월스트리트를 집어삼키다 (블랙먼데이와 SPY)

세상의 조롱을 받던 보글의 바보짓이 어떻게 전설이 되었을까?

1987년, 역사상 최악의 주가 폭락 사태인 '블랙먼데이'가 찾아왔다. 하루아침에 주가가 22% 넘게 증발하자, 시장을 예측할 수 있다며 잘난 척하던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은 패닉에 빠져 주식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뱅가드의 인덱스 펀드 투자자들은 달랐다. '시장을 샀으니 시장과 함께 호흡하고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보글의 굳건한 철학 아래, 이들은 지옥 같은 폭락장에서도 무던하게 자리를 지켰다. (Stay the Course!)

결국 시장은 회복했고, '보글의 바보짓'이라 불리던 그 펀드는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장기 수익률로 수많은 잘나가는 액티브 펀드들을 압살하기 시작했다. 1,100만 달러로 초라하게 시작했던 이 펀드는 훗날 수백조 원을 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뱅가드 500 인덱스 펀드'로 우뚝 선다.

그의 발명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3년, 미국의 자산운용사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보글의 '인덱스 펀드' 아이디어를 주식 시장에 상장시켜 누구나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닳도록 매수하는 세계 최초의 ETF, 'SPY'의 탄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잭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주식을 너무 쉽게 단타 칠까 봐 ETF의 상장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어쨌든 지금의 수천조 원 규모 ETF 산업 생태계 전체가 잭 보글의 그 '바보짓' 하나에서 파생된 셈이다.)


살 수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 투자자가 소유하는 뱅가드

우리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HTS에서 검색해 언제든 살 수 있다. 하지만 잭 보글이 세운 '뱅가드' 주식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다. 왜냐고? 애초에 시장에 상장되어 있지 않으니까.

여기서 한 가지 뼈아프고도 흥미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개인 투자자들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 위대한 할아버지는 왜 워런 버핏만큼 미디어에 자주 나오지 않고, 세계 최고의 갑부도 아닐까?

그 답은 그가 뱅가드를 세울 때 내린, 가장 바보 같지만 가장 위대한 결정 하나에 있다.

현재 뱅가드가 전 세계에서 굴리는 자금(AUM)은 무려 **9조 달러(약 1경 2,000조 원)**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의 거대 괴수 블랙록(BlackRock)과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압도적인 규모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만약 뱅가드가 상장 회사였다면 그 기업 가치만 수백조 원을 훌쩍 넘었을 것이고, 창립자인 잭 보글은 일론 머스크나 워런 버핏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상위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월스트리트 회사들은 펀드 투자자의 돈을 굴리면서, 거기서 나온 엄청난 이익을 회사의 주주나 경영진이 싹쓸이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보글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뱅가드의 주인이 되어 막대한 부를 쥘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대신 '펀드 투자자들이 펀드를 소유하고, 그 펀드들이 다시 뱅가드 회사를 소유하는' 완벽한 상호(Mutual) 소유 구조를 만들었다.

회사가 돈을 벌면? 배당을 줄 외부 주주(자신 포함)가 없으니, 그 돈을 모조리 **'수수료 인하'**로 투자자들에게 돌려주었다. 오늘날 우리가 편하게 누리는 0.03% 같은 어이없는 초저보수 ETF들은 모두 잭 보글이 수백조 원짜리 거대한 부를 포기한 대가로 우리에게 쥐여준 눈물겨운 선물인 셈이다.

수천조 원을 굴리는 뱅가드의 수장이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남긴 재산은 약 8천만 달러(1,000억 원) 남짓이었다. 매일 기차로 출퇴근하고,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타던 그의 검소한 삶 자체가 훌륭한 철학이었다.

언론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버핏에게 열광했지만, 평범한 대중들은 자신의 부를 이웃과 나눈 보글을 '월스트리트의 성인(Saint)'이라 불렀다.


내 시간은 빌린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아쉬움

1996년, 60대의 잭 보글은 기적적인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는 이후의 삶을 **"빌린 시간(Borrowed time)"**이라 불렀다. 그리고 남은 생을 온전히 우리 같은 평범한 개인 투자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데 바쳤다.

금융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파이를 함께 나누는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평생을 걸쳐 증명했다.

그 위대한 영웅은 2019년 1월, 89세의 나이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와 지나온 궤적을 뒤늦게 책으로 읽어 내려가며 나는 깊은 탄식과 슬픔을 느꼈다.

'아, 흑흑... 내가 왜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 내가 투자에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더라면, 이 멋진 할아버지가 살아 숨 쉬며 월스트리트에 불호령을 내리던 그 동시대의 공기를 함께 마실 수 있었을 텐데.'

뼈저린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잭 할아버지가 남긴 **'선한 영향력'**은 VOO, VTI 같은 펀드의 이름으로 영원히 내 계좌 속에, 그리고 내 삶 속에 남아있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 기부의 삶을 꿈꾸고 기계적인 시스템 투자를 이어가는 것도 결국 그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장을 소유하라. 그리고 끝까지 버텨라.

Stay the Cour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