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투자 진화론 6장] 탐욕에 올라타다: 모멘텀(Momentum)의 발견

모멘텀의 발견

도입: 나를 파멸시켰던 '탐욕의 관성'

앞서 위대한 학자들의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고백하건대 2010년대의 저는 고상한 가치투자자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가치 분석이나 펀더멘털은커녕, 그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 하루가 멀게 상한가를 치는 정치 테마주와 급등주만 쫓아다니던 전형적인 불나방이었습니다. 대중의 끈적끈적한 탐욕과 FOMO(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쓸려 내 계좌를 불길 속에 던져 넣었죠.

그 무지성 추격 매수의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계좌는 반토막이 났고, 제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원금을 회복하기까지는 그로부터 무려 **11년이라는 피눈물 나는 시간(2021년)**이 걸렸습니다. 이 끔찍한 트라우마 때문에, 저는 한동안 '오르는 주식을 따라 사는 행위' 자체를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자 파멸의 길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투자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습니다.

나의 계좌를 박살 냈던 그 맹목적인 추세 추종, 광기 어린 군중의 쏠림 현상이 단순히 어리석은 개미들의 일탈이 아니라...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수익을 내는 제4의 법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의 실패는 '추세'에 올라탄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거대한 탐욕의 에너지를 **'시스템과 원칙 없이, 쓰레기 주식(테마주)에 감정적으로 배팅한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1. 마크 카하트, 시장의 '관성'을 해독하다

이런 가격 추세를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연구가 1997년에 발표됐습니다. 유진 파마의 제자였던 **마크 카하트(Mark Carhart)**의 4요인 모형입니다.

그는 스승인 파마-프렌치의 3요인(시장, 규모, 가치) 모델만으로는 펀드 매니저들의 수익률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거대한 데이터를 뒤져 **'네 번째 팩터(4-Factor)'**를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모멘텀 요인 (UMD: Up Minus Down)'**이었습니다.

투자의 세계에 강림한 뉴턴의 제1법칙

모멘텀 팩터의 결론은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폭력적이었습니다. "과거 3개월에서 1년 동안 가장 많이 오른 주식이, 다음 달에도 계속 오를 확률이 가장 높다." 반대로 "가장 많이 떨어진 주식은, 다음 달에도 계속 곤두박질친다."

물리학의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달리던 물체는 계속 달리려 한다)'이 주식 시장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업의 내재가치가 훌륭하든 쓰레기든 상관없었습니다. 한 번 추세(Momentum)를 타면 그 관성의 힘으로 끝도 없이 날아간다는 이 끔찍한 진실은, 펀더멘털을 맹신하던 제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습니다.


2. 모멘텀의 진짜 연료: 인간의 탐욕 (FOMO)

그렇다면 이미 비쌀 대로 비싸진 주식이 도대체 무슨 힘으로 더 오르는 것일까요? 카하트가 발견한 모멘텀의 비밀을 파고들다 보니, 저는 또다시 앞선 3장의 '행동재무학'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모멘텀을 쏘아 올리는 로켓 엔진의 연료는 다름 아닌 인간의 끈적끈적한 탐욕이었습니다.

  • 대중의 FOMO (Fear Of Missing Out): 어떤 주식이 급등하기 시작하면 이성적인 분석은 끝납니다. "옆집 철수도 이걸로 외제 차를 뽑았다는데, 나만 소외되는 거 아냐?" 이 공포가 불나방 같은 묻지마 매수를 부르고, 주가를 하늘로 쏴 올립니다.
  • 기관 투자자의 실적 포장 (Window Dressing): 펀드 매니저들도 결국 월급쟁이입니다. 분기 말이 되면 고객들에게 "우리 펀드는 요즘 제일 핫한 주식을 들고 있습니다!"라고 자랑해야만 돈이 안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거품인 줄 뻔히 알면서도, 최고점에 다다른 주식을 울며 겨자 먹기로 더 사들여 추세를 연장시킵니다.
  • 기계들의 무지성 추세 추종: 여기에 오르는 추세만 감지하면 기계적으로 매수 폭탄을 던지는 알고리즘 봇(Bot)들이 가세하며 모멘텀은 걷잡을 수 없는 괴물이 됩니다.

3. 가장 날카로운 '창(Spear)'의 뼈대를 얻다

카하트의 연구는 제 투자 철학의 빈 공간을 완벽하게 메워 주었습니다. "시장이 이성을 잃고 미쳐 달릴 때는, 굳이 방패(가치) 뒤에 숨어서 시장을 가르치려 들지 말자. 펀더멘털에 대한 고집을 잠시 내려놓고, 그 달리는 광기의 말 등에 기계적으로 올라타서 끝까지 단물을 빨아먹자!"

이 위대한 깨달음은 훗날 제 포트폴리오의 마지막 퍼즐이자 가장 날카로운 공격의 창을 만들어내는 흔들림 없는 뼈대가 되었습니다. 모멘텀 팩터의 진짜 무서움은 단순히 수익률이 높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팩터는 특정 산업이나 종목에 대한 '의리'나 '고집'이 전혀 없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어제까지 찬양하던 기술주를 가차 없이 버리고 에너지주나 헬스케어주로 갈아타는 **'지독한 생존형 카멜레온'**입니다. (이 모멘텀 팩터가 어떻게 **가장 기민하게 적응하는 카멜레온 같은 무기(SPMO)**로 완성되어 제 계좌에 담기게 되는지는 훗날 9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역사를 통해 저는 인간의 '공포'를 먹고 자라는 묵직한 방패(가치/Value)에 이어, 환경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적응하며 인간의 '탐욕'을 타고 날아오르는 창(모멘텀/Momentum)까지 모두 손에 넣은 것입니다.


결론 및 다음 장 예고: 가장 위대한 베이스캠프를 위협하는 것들

자, 이제 저의 무기고는 든든해 보였습니다.

  •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대지, 시장 평균(인덱스 펀드)
  • 공포를 줍는 티타늄 방패, 가치(Value)
  • 탐욕에 꽂히는 날카로운 창, 모멘텀(Momentum)

이론은 완벽했고, "시장 지수(S&P 500)를 코어로 꽉 쥐고 있으면 절대 망하지 않아!"라는 존 보글의 가르침은 확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의 차트를 복기하다가 2000년에 벌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 거대한 거품, **'닷컴 버블(Dot-com Bubble)'**과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연달아 마주하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지옥 같은 폭락 속에서 인덱스 펀드 자체는 끝내 살아남아 우상향을 증명해 냈지만, 그것을 쥐고 있는 '인간의 멘탈'은 여지없이 붕괴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처럼 믿었던 S&P 500을 들고도 투자자들이 파멸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기계와 인간의 차이, 그리고 연이은 대폭락 속에서 우리의 멘탈을 지켜주기 위해 탄생한 '스마트 베타(Smart Beta)' 혁명의 이야기가 다음 장에서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