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생존기 에필로그] 손실 앞에서 다시 투자의 목적을 묻다

저는 채권 전문가가 아닙니다.
금리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채권을 운용해 온 펀드매니저도 아닙니다. 주식만으로는 불안하다는 생각에 채권을 공부하기 시작한 평범한 개인 투자자입니다.
처음에는 채권을 알면 계좌가 조금 덜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식이 어려운 시기에 기다릴 시간을 벌고, 언젠가 회사를 떠난 뒤에는 정기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 기대에서 이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글을 쓰는 지금, 제 앞에 남은 것은 안정적인 포트폴리오가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채권과 적지 않은 손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 적어둔 기록입니다.
이 에필로그는 그 실패를 다른 의미로 포장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실패한 투자를 실패했다고 적고, 그 뒤에도 제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한 글입니다.
1. 초안을 쓴 뒤에도 손실은 계속되었다
이 글의 초안을 처음 적었을 때에도 장기채 투자는 이미 손실이었습니다.
그래도 당시에는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장기금리도 조금씩 낮아지고, 오래 기다린 만큼 채권 가격도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실은 컸지만 아직 진행 중인 투자라고 여겼습니다.
2026년 10월, 그 문장을 그대로 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10월 7일 미국 국채 20년물 금리는 5.71%, 30년물 금리는 5.67%였습니다. 제가 심리적인 경계로 생각했던 5%를 이미 넘어선 뒤였습니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장기금리도 함께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장기채의 가격은 더 낮아졌습니다.
엔화도 제가 기다리던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달러당 엔화는 158엔대였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이가 줄어들면 엔화가 강해질 것이라고 보았지만, 엔화 약세는 이어졌고 엔화에 노출된 장기채의 손실도 더 커졌습니다.
초안을 쓸 때보다 상황은 분명히 나빠졌습니다.
이제 이 투자를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과정이라고만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2026년 10월 현재, 제 장기채 투자는 실패로 남아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 시장을 설명하는 일과 제 선택을 설명하는 일
장기금리가 오른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은 많습니다.
물가가 예상보다 오래 남았고,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기준금리와 장기금리는 서로 다르게 움직일 수 있고, 투자자가 긴 만기를 보유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기간 프리미엄도 달라졌습니다. 엔화 역시 두 나라의 정책금리만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설명은 시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제 손실을 온전히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시장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는 사실과, 그 결과가 제 계좌에 이렇게 크게 남았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방향은 제가 정할 수 없었지만, 어떤 상품을 얼마나 살지는 제가 선택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실패의 원인은 시장의 복잡함보다 제 선택에 더 가까이 있었습니다.
저는 채권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채권을 안전한 자산이라고 먼저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식이었다면 경계했을 긴 만기와 레버리지, 환율 위험을 채권에서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국채의 신용이 안전하다는 말과 그 국채를 담은 ETF의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말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만기까지 보유하는 개별 채권과 긴 듀레이션을 계속 유지하는 ETF의 차이도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제가 몰랐던 것은 채권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르는 상태에서 확신을 갖는 제 방식도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3. 공부한다는 말 뒤에서 상품은 계속 늘어났다
채권을 잘 모르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마다 그 개념을 설명해 주는 상품을 함께 샀다는 데 있었습니다.
BND와 LQD를 통해 종합채권과 회사채를 보았습니다. 한국의 저성장을 생각하며 30년 국고채를 샀고, 금리가 오르자 SGOV와 CD금리 ETF, CMA와 MMF로 옮겼습니다. 금리 인하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TLT와 EDV를 샀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오래갈 가능성을 공부하면서 LTPZ를 더했고, 기다린 시간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으로 TMF도 샀습니다. 마지막에는 미국 장기채와 엔화를 하나의 상품 안에 담았습니다.
각각의 매수에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설명들은 하나의 원칙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기에 많이 이야기되던 위험과 수익의 가능성을 따라가며 상품을 바꾸었고, 매수한 뒤에는 그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읽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공부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공부와 매수의 순서가 자주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산 것이 아니라, 사고 난 뒤에 이해하려 했습니다. 때로는 새로운 지식이 판단을 바꾸기보다 이미 내린 판단에 이유를 더해주기도 했습니다.
상품은 다양해졌지만 포트폴리오가 맡은 역할은 선명해지지 않았습니다.
현금을 보관하기 위한 자산, 주식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자산, 금리 하락에 수익을 기대한 자산, 은퇴 후 현금흐름을 위한 자산이 같은 계좌 안에서 섞였습니다. 역할을 나누지 않았으니 각 자산을 얼마만큼 보유해야 하는지도 정하기 어려웠습니다.
복잡한 상품을 이해하는 일이 투자 원칙을 세우는 일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연재를 쓰면서 가장 오래 남은 깨달음은 아마 그 차이일 것입니다.
4. 주식에서 얻은 수익이 줄어든 자리
손실의 크기를 적는 일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저는 오랜 시간 주식 투자에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개별 종목을 고르는 일에서 시작해 ETF와 분산, 팩터와 자산배분을 공부했습니다. 감정에 따라 매매하지 않기 위한 기준도 조금씩 만들었습니다.
그 시간이 수익으로 이어지기 시작했을 때, 저는 채권이 그 성과를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주식 투자로 얻은 수익의 대부분을 채권 투자에서 깎아 먹었습니다.
수익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아프지만, 채권을 편입한 목적과 결과가 달랐다는 점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주식이 좋지 않은 시기에 버틸 수 있도록 돕는 자산을 원했는데, 저는 그 자산에서도 더 큰 수익을 얻으려 했습니다.
안전을 원하면서 가장 긴 듀레이션을 골랐고, 기다림을 원하면서 매일 노출을 다시 조정하는 레버리지 상품을 샀습니다. 단순한 현금흐름을 원하면서 금리와 물가, 환율을 함께 판단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채권이 제 주식 수익을 줄인 것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채권에 너무 많은 역할을 맡긴 제 선택이 수익을 줄였습니다.
이 차이를 인정해야 같은 실수를 다른 상품으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실패 뒤에 남겨야 할 몇 가지 기준
실패를 인정한다고 해서 곧바로 다음 선택이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손실이 큰 자산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 인내인지, 손실을 줄이는 것이 원칙의 수정인지도 쉽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채권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지, 제가 사용한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아직 모든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앞으로 새로운 채권 상품을 살펴볼 때 먼저 확인할 기준은 이전보다 조금 분명해졌습니다.
- 이 자산이 현금 보관, 변동성 완화, 미래 현금흐름 가운데 어떤 역할을 맡는지 먼저 적습니다.
- 기대수익보다 손실이 났을 때 감당할 수 있는 비중을 먼저 생각합니다.
- 금리와 환율 전망이 틀려도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 공부를 위해 매수하지 않고, 이해한 뒤에도 필요한 경우에만 매수합니다.
- 같은 목적을 더 단순한 상품으로 이룰 수 있다면 단순한 쪽을 선택합니다.
새로운 투자 비법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투자에 앞서 당연히 했어야 할 질문들입니다. 저는 여러 번의 손실을 지나고 나서야 그 질문을 상품보다 먼저 놓게 되었습니다.
6.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월급
이 연재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제가 채권을 공부한 이유는 비교적 소박했습니다.
언젠가 회사를 떠나 월급이 멈춘 뒤에도 시장에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으로 생활의 바닥을 만들고, 투자 자산에서 들어오는 현금으로 생활의 일부를 채우고 다시 투자하고 싶었습니다.
현재의 제가 미래의 저에게 보내는 월급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목적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곳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금리의 정점을 잘 고르고 긴 듀레이션을 미리 사두면 미래의 현금흐름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한 번의 큰 판단보다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오래 반복하는 일이 그 목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월급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계좌가 아닐 것입니다.
매달 남긴 돈과 그 돈이 만든 이자,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다시 투자한 시간이 조금씩 쌓인 결과에 가까울 것입니다. 기대한 만큼 빠르지 않더라도 생활을 흔들지 않고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장기금리가 곧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도, 엔화가 언젠가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도 아닙니다. 다음 매수에서는 이전과 다른 질문을 할 수 있고, 그 질문을 반복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7. 제가 지키고 싶은 항로
예전의 저는 ‘Stay the Course’를 한번 선택한 상품을 끝까지 버티는 태도로 이해했습니다.
손실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과 인내를 구분하지 못했고, 처음의 판단을 바꾸는 일을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 문장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지켜야 할 것은 상품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TLT나 EDV, LTPZ와 TMF, 엔화가 제 투자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특정한 시기에 제가 선택한 도구였습니다. 도구가 목적에 맞지 않았다면 돌아보고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미래의 나에게 월급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은 계속 지키고 싶습니다. 시장이 좋지 않을 때에도 생활을 위해 주식을 서둘러 팔지 않고, 은퇴한 뒤에도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목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 연재를 마친다고 해서 채권에 대한 고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손실도 바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의 판단도 다시 틀릴 수 있습니다. 다만 실패를 시장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제 선택의 기록으로 남겨두면, 적어도 같은 이유로 같은 위험을 반복할 가능성은 조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자에서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금리의 방향도, 환율의 시점도 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투자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품을 사지 않을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지킬지는 제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제가 지켜야 할 항로는 그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입니다.
주식에서 얻은 수익 대부분을 채권에서 잃은 뒤에야, 저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투자는 미래의 나에게 어떤 시간을 남겨주는가.
앞으로는 유행하는 채권의 이름보다 그 질문을 먼저 보겠습니다. 실패를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그 위에서 다음 월급을 천천히 준비하겠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이해하는 Stay the Course입니다.
거시경제 생존기 연재 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