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생존기 3장] 금리의 정점을 기다리며 듀레이션을 늘렸다

기다릴 수 있게 되자 기다리기 싫어졌다
SGOV와 CD금리 ETF, CMA로 옮긴 뒤 계좌는 조용해졌습니다.
장기채를 보유할 때처럼 금리가 조금 움직일 때마다 큰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고, 연준이 금리를 올릴수록 초단기 자산이 받는 이자는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는 동안에도 시간이 제 편에서 작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22년 6월 전년 동월 대비 9.1%까지 올랐던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3년 6월 3.0%로 내려왔습니다. 연준은 2023년 7월 기준금리를 5.25~5.50%까지 올린 뒤 9월 회의에서 동결했습니다.
연준은 여전히 물가가 높고 추가 긴축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는 다른 문장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물가는 정점에서 내려왔고, 금리 인상은 일단 멈췄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꼭대기 아닐까?’
금리가 높은 동안 초단기채에서 이자를 받는 것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다음 단계가 금리 인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SGOV의 이자는 시장금리를 따라 낮아질 것이고, 반대로 장기채는 금리 하락에 따라 큰 가격 상승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금은 제가 판단을 미룰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확신이 생기자 기다림은 안전이 아니라 기회비용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듀레이션은 채권에 달린 지렛대였다
채권 가격과 시장금리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새로 발행되는 채권이 더 높은 이자를 주면, 과거의 낮은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은 가격을 내려야 경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장금리가 내려가면 기존 채권의 상대적인 가치가 올라갑니다.
하지만 모든 채권이 같은 폭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금리 변화에 채권 가격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가 듀레이션(Duration)입니다. 듀레이션은 단순히 만기까지 남은 연수를 뜻하지 않습니다. 원금과 이자를 언제 받는지까지 반영해 계산한 가격 민감도입니다.
대략적으로 듀레이션이 10년인 채권형 펀드는 시장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가격이 약 10% 하락하고, 1%포인트 내릴 때 약 10% 상승할 수 있습니다. 실제 움직임은 수익률 곡선과 볼록성, 보유 채권의 변화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원리는 분명합니다.
듀레이션이 길수록 금리 하락의 수혜가 커지고, 금리 상승의 상처도 깊어집니다.
2022년에는 이 지렛대가 저를 아래로 눌렀습니다. 2023년의 저는 같은 지렛대를 반대 방향으로 이용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금리 상승기에 손실을 키웠던 듀레이션이, 금리 하락기에는 수익을 키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선택은 TLT였다
초단기 자산에서 나와 처음 선택한 장기채는 TLT였습니다.
TLT는 잔존 만기가 20년을 넘는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ETF입니다. 미국 정부의 국채만 담기 때문에 기업의 부도 위험과는 거리가 있지만, 평균 만기가 길어 금리 변화에는 매우 민감합니다. 매월 분배금을 지급하면서 장기 듀레이션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상품입니다.
제가 TLT를 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자본 차익이었습니다. 금리가 정점을 통과해 장기 시장금리까지 내려가면, TLT의 긴 듀레이션이 가격 상승을 확대해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둘째는 주식에 대한 방어였습니다. 경기 침체가 발생해 기업 실적과 주가가 하락할 때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안전자산 수요까지 몰린다면, 장기 국채의 상승이 주식 손실의 일부를 상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논리는 타당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목적이 섞여 있었습니다.
- 주식이 하락할 때 포트폴리오를 지키기 위한 보험
- 금리 하락을 예상하고 수익을 얻으려는 방향성 투자
보험은 필요한 만큼만 보유하고 작동하지 않는 평온한 시기를 견뎌야 합니다. 반면 방향성 투자는 전망에 대한 확신이 커질수록 더 많이 사고 싶어집니다.
저는 방어를 위해 TLT를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금리 인하가 가까워졌다는 믿음이 강해질수록 관심은 방어력보다 상승 폭으로 옮겨갔습니다.
TLT에서 EDV로 이동했다
TLT를 이해하고 나자 또 다른 욕심이 생겼습니다.
‘금리가 내려갈 것이 확실하다면, 같은 돈으로 더 큰 듀레이션을 확보할 수 없을까?’
그 질문 끝에서 발견한 상품이 뱅가드의 EDV였습니다.
EDV는 만기가 20~30년 남은 미국 재무부의 STRIPS에 투자합니다. STRIPS는 미국 국채의 원금과 개별 이자 지급분을 떼어내 각각 별도의 증권으로 거래할 수 있게 만든 구조입니다. 분리된 각각의 조각은 만기 때 한 번의 현금흐름만 지급하므로 제로쿠폰 채권처럼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먼 미래에 100달러를 받을 권리를 오늘 30달러에 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유 기간 중 정기적인 쿠폰을 받는 대신, 만기가 가까워지면서 할인된 가격과 최종 지급액 사이의 차이가 수익으로 쌓입니다.
중간에 현금흐름을 돌려주는 일반 이표채보다 돈을 훨씬 먼 미래에 받기 때문에, STRIPS의 듀레이션은 매우 깁니다. 뱅가드 자료에서 EDV가 추종하는 지수와 펀드의 평균 듀레이션은 시점에 따라 약 24년 수준으로 제시됩니다. TLT의 유효 듀레이션이 대체로 15~17년 안팎에서 움직이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긴 지렛대입니다.
단순한 근사치로 보면 시장금리가 1%포인트 움직일 때 EDV의 가격은 반대 방향으로 20% 이상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실제 가격 변화가 정확히 그 숫자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금리 변화가 큰 손익으로 확대된다는 뜻은 충분했습니다.
저는 이를 자본 효율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TLT보다 적은 금액으로 비슷한 듀레이션 노출을 만들 수 있다면, 남은 자금은 주식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주식의 성장 가능성은 더 많이 보유하면서도 위기가 오면 EDV가 더 강하게 반응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더 적은 자본으로 같은 방어력을 확보하는 정교한 설계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금리 전망이 틀렸을 때 같은 돈으로 더 큰 손실을 만들 수 있는 설계이기도 했습니다.
이자가 없는 채권에서도 수익은 발생한다
제로쿠폰이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수익을 얻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답은 매수가격과 만기 지급액의 차이에 있습니다.
STRIPS는 미래에 받을 금액보다 할인된 가격에 거래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만기가 가까워질수록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가격은 최종 지급액을 향해 접근합니다. 보이지 않던 이자가 가격 안에서 쌓이는 셈입니다.
다만 EDV는 만기가 정해진 STRIPS 한 종목을 사서 끝까지 보유하는 것과 다릅니다.
ETF는 지수를 추종하기 위해 만기가 짧아져 지수 범위를 벗어나는 채권을 매도하고, 다시 20~30년 구간의 STRIPS를 편입합니다. 투자자가 EDV를 오래 들고 있다고 해서 어느 날 펀드 전체가 만기에 도달하고 정해진 액면가를 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펀드는 계속해서 긴 듀레이션을 유지합니다.
이 차이는 중요했습니다.
개별 국채는 만기까지 보유하면 약속된 원금을 받는 시점이 옵니다. 반면 EDV 투자자는 ETF를 매도하는 시점의 시장가격에 노출됩니다. 미국 정부가 지급을 이행할 가능성과 별개로,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매도해야 한다면 큰 손실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신용이 안전하다고 가격까지 안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장에서 배운 교훈은 EDV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위험을 모르고 산 것이 아니라,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으로 감수했습니다.
볼록성이 듀레이션을 없애주지는 않았다
EDV를 공부하면서 저를 더욱 끌어당긴 개념은 볼록성(Convexity)이었습니다.
듀레이션은 금리와 채권 가격의 관계를 직선으로 근사합니다. 그러나 실제 관계는 곡선에 가깝습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볼록성이 큰 채권은 금리가 내려갈 때 듀레이션의 단순 계산보다 조금 더 오르고, 금리가 올라갈 때는 조금 덜 하락하는 성질을 보입니다.
만기가 길고 쿠폰이 없는 STRIPS는 일반적으로 볼록성이 큽니다. 저는 이 비대칭성이 EDV를 더욱 효율적인 방어 자산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서도 기대에 맞는 부분을 먼저 보았습니다.
볼록성은 듀레이션 자체를 없애주지 않습니다. EDV는 볼록성의 이점을 갖는 동시에 절대적인 듀레이션이 매우 깁니다. 금리가 오르면 단순 계산보다 손실이 조금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 가격 하락이 작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구나 모든 만기의 금리가 같은 폭으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장기금리는 물가 기대와 재정적자, 국채 수급, 기간 프리미엄에 따라 다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연준이 금리를 내린다’와 ‘EDV의 가격이 크게 오른다’ 사이에 여러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지 않았습니다.
방어와 수익 추구의 경계가 흐려졌다
처음 장기채를 다시 산 이유는 주식 포트폴리오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경기 침체가 오고 주식이 무너질 때, 장기 국채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계좌의 충격을 줄여주길 바랐습니다. 그렇다면 장기채는 결과를 맞히기 위한 자산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견디기 위한 자산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행동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금리 인하 시점을 예상했고, TLT보다 듀레이션이 긴 EDV를 찾았으며, 같은 자본으로 더 큰 가격 상승을 얻는 방법을 계산했습니다. 방어를 이야기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금리 하락으로 얻을 수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보유 목적은 보험이었지만, 보유 과정은 투기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장기채가 위험했던 것이 아니라, 방어 자산에 시장 전망을 증명해야 한다는 임무까지 맡긴 것이 문제였다.
TLT에서 EDV로 이동한 선택 자체가 반드시 잘못은 아닙니다. 필요한 헤지 규모를 계산하고 긴 변동성을 감당할 수 있다면, EDV는 적은 자본으로 큰 듀레이션을 확보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얼마나 큰 위험을 견딜 수 있는지보다, 제 전망이 얼마나 맞을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금리는 멈췄지만 장기채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2023년 하반기,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사실상 멈췄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대한 장기채의 상승은 곧바로 오지 않았습니다. 물가는 정점에서 내려왔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경제와 고용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기준금리가 동결된 뒤에도 장기 시장금리는 다시 올라갔습니다.
저는 방향이 아니라 시간을 또다시 틀리고 있었습니다.
금리 인하가 언젠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은 유지됐지만, 그날까지 EDV의 긴 듀레이션을 얼마나 오래 견뎌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초단기채에서 받을 수 있었던 높은 이자를 포기한 상태에서 장기채 가격까지 하락하자 조급함이 커졌습니다.
그때 멈춰서 포지션의 크기를 다시 보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물가가 걱정되자 물가연동 장기채인 LTPZ를 더했고, 금리 인하가 늦어질수록 더 큰 반등이 올 것이라며 3배 레버리지 장기채 ETF인 TMF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처음에는 포트폴리오를 방어하기 위해 장기채를 다시 담았습니다.
그러나 비중을 늘리고 더 큰 변동성을 가진 상품을 더하면서, 그 선택은 금리 하락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려는 투자에 가까워졌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끈적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선택한 LTPZ와, 금리 전망에 대한 확신을 증폭시킨 TMF의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듀레이션의 손실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레버리지의 음의 복리가 어떻게 제 계좌를 녹였는지도 함께 기록하겠습니다.
